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치볼드 프림로즈 (문단 편집) === 총리 재임기 ===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프림로즈는 아프리카 내 영국 세력을 확장하는데 총력을 동원했고[* 그가 평소 가장 즐겨하던 말이 '이집트의 주인이 인도의 주인이 된다.'였다. 여담으로 이 말을 한 당사자는 영국에게서 이집트를 뺏으려고 시도했던 [[나폴레옹 보나파르트]] 그리고 이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프림로즈는 여타 유럽 강대국들과의 충돌도 불사하지 않았다.] 글래드스턴 내각 평생의 숙원이었던 아일랜드 자치권 부여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도록 백방으로 노력했으나, 이는 끝끝내 부결되고 만다. 이후 1894년 그의 정치적 대부였던 글래드스턴이 정계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공석이 된 총리자리에 프림로즈가 지명된다.[* 이 당시 자유당에는 그보다 더 노련하고 경력이 많은 지도자들이 많았고 이들은 프림로즈의 총리 등극에 격렬히 반발했지만 자유당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던 우리의 [[빅토리아 여왕]]께서 '그래도 프림로즈는 백작이니까 좀 낫겠지'라는 심정으로 프림로즈의 임명을 강행하셨다고 전해진다.] 그렇지만 프림로즈 내각은 재임기간 내내 엉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. 오스만 제국이 자행하던 [[아르메니아인 대학살]]을 수수방관하면서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군을 증강시키려는 계획은 프랑스, 러시아와 같은 라이벌들의 심기는 심기대로 불편하게 한 채 여당 자유당의 반발로 무산되고 만다. 여기에 빅토리아 여왕 때문에 억지로 수상 자리에서 밀려났던 당 내 라이벌들 역시 신나게 뒤에서 프림로즈의 정책을 방해하고 다니는 판국이었다. 이런 총체적 난국의 상황 속에서 1895년 6월 21일 군 예산안이 의회에서 부결됐고,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던 프림로즈는 이 부결안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안이라고 판단하여 사임하고 만다. 그의 후임으로 빅토리아 여왕에게 지명된 인물은 보수당 당수였던 [[로버트 개스코인세실]]. 이 여파로 1달 뒤 1895년 영국 총선(1895년 7월 13일부터 8월 7일)으로 인해 영국의 여당은 보수당으로 넘어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